과거보다 미래를 보는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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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노기술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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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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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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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바로 뒷 관객의 한 마디가 귀에 들어왔음. 아카데미 상을 받은 영화였지만, 그 관객은 '별로'라는 한 단어로 영화를 평가했음. 뛰어난 예술작품일지라도 '별로'라는 평가를 듣기도 하는 것처럼 누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평가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함. 평가를 잘 받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평가를 잘 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임.
우리말로 '평가'라 하는 것을 영어로 옮기면 어떤 단어가 적합할까?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Evaluation'이라는 답이 돌아옴. 그런데 유럽의 연구기관장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듣게 된 그들의 '평가'는 'Assessment'였음. 두 단어 모두 우리말로 바꾸면 '평가'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의미는 사뭇 다름.
두 단어의 차이를 살펴보자. 우선 Evaluation은 과거 성과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단어로 볼 수 있음. 학창시절 '수·우·미·양·가' 'A·B·C·D·F'가 Evaluation의 결과임. 반면 Assessment는 미래 발전 가능성을 진단하고 평가하는 데 쓰이는 단어로 볼 수 있음. 담임 선생님이 생활기록부에 써주시던 '이 학생은 어떤 부분이 장점이고, 어떤 부분이 취약해 이를 보완하면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이 Assessment의 결과라 할 수 있음. Evaluation의 목적이 성적과 점수를 산출하는 '가치판단'이라면, Assessment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 지 '진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데 차이가 있음.
단순한 단어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철학자 니체는 '모든 의식적 사고는 언어의 도움을 받는다'라고 했음. 우리가 어떤 단어를 사용하느냐는 우리의 철학, 즉 의식과 행동을 결정하는 일이라 할 수 있음. 그리고 그 철학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을 담고 있음.
과학기술분야에 이 논리를 적용하면, 우리가 연구결과를 평가할 때 Evaluation을 할 것인지, Assessment를 할 것인지에 따라 연구의 방향성에 큰 차이가 생길 수 있음.
평생을 연구자로서 지내오면서 수도 없이 평가를 받아봤지만 그동안의 평가들은 대체로 Assessment보다 Evaluation에 가까웠음. SCI급 논문 발표수, 특허 건수, 기술료 수입과 같은 정량적 수치에 따라 연구가 평가되곤 했음. 이런 평가 방식도 연구 성과를 정량화해서 평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장점은 있음. 하지만 정량화된 지표에 맞추기 위해서 불필요한 논문 건수, 특허 건수를 양산해내게 되는 단점도 존재했음. 효율성 추구가 비효율을 만들어냈던 것임.
최근 몇 년간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됐고 Assessment 위주의 평가체계로 나아가고 있음. 불필요한 정량지표들은 삭제했고, 전문가의 정성평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평가 방식을 바꿨음. 연구자들이 과거의 '건수'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의 방향성에 대해 컨설팅을 받는 평가체계로 전환한 것임.
연구기관 차원에서도 장기적 안목으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개선했음. 연구기관의 연구사업평가 주기를 기존 3년에서 6년으로 확대한 것임. 3년 만에 평가를 받으려다보면 단기성과인 '건수'에 매달려야 하지만 주기가 6년으로 확대됨에 따라 훨씬 더 도전적이고 파급력이 큰 연구를 할 수 있기 때문임.
많은 부분에 있어서 연구평가의 체계와 철학이 Evaluation에서 Assessment로 조금씩 전환돼 가고 있음. 하지만 Evaluation은 잘못된 것이고 Assessment만 정답인 것은 아님. 두 개의 가치가 조화를 이뤄 미래지향적인 연구를 위한 발전적 평가체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함.
빠른 시간 내에 과학기술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성과보다 미래로의 방향성이 중요함. 연구자가 높은 산을 오를 때 지나온 발걸음을 돌아보기보다 산의 정상을 바라보고 오를 수 있도록 하는 지원과 평가가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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