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계 대박은 장기투자와 기업협력이 관건
페이지 정보
- 발행기관
- KISTI
- 저자
- 산학연협력
- 종류
- 나노기술분류
- 발행일
- 2010-04-30
- 조회
- 5,266
본문
“정석으로 일관했습니다. ‘고위험, 고수익’이란 목표를 표방한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의 특성에 맞게 일단‘고위험’에 과감히 투자했죠. 이후에는‘고수익’이란 열매가 확연히 드러나더군요. 다만 한국 과학기술계에서 정석을초지일관 지키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을 10년간 이끌어오다 올해 3월 마침표를 찍은 이조원 단장. 그는 지난 세월에 대한 소회를 끝없이 쏟아냈다.책으로 몇 권 써도 성에 차지 않을 만큼 머리와가슴에 담아둔 얘기가 가득하다고 했다.
10년간 국가가 사업단에 지원한 비용은 904억원. 4400여명의 초대형 식구가 모여 연구논문 1027건, 특허출원 1251건의 성과를 올렸다.사업단이 연구성과를 기업에 이전해온 결과 기업이 정부에 제출하겠다고 약속한 기술이전료는 총 282억원에 달한다.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단 가운데 최고의‘기술이전료 성적’을 거둔것이다.하지만 이 단장은 그 길고 긴 얘기를 산전수전 다 헤쳐온 노련한 수장답게 몇 가지의 사례를 통해 간략히 요약해냈다. 그가 자신 있게‘대박’과‘성공’이란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이 사업단의 객관적인 성과사례는 정부가10년간 1000억원 이상 과감하게 투자해온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내릴 한 가지 계기로 작용할 것 같다. 오로지 테라급에 초점을 맞추다이 단장이 말하는 사업단의 성공 요인 첫 번째는‘미래에 대한 정확한 전망과 장기적 투자’로요약할 수 있다. 이 단장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금속과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카네기멜론대와 IBM Watson 연구소의연구원 생활을 거쳐 1990년대 초반부터 삼성종합기술원 신소재연구실을 이끌고 있었다.
당시 이 단장은 반도체 제작에 몰두하다 20~30년 뒤자신이‘먹고 살’연구주제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반도체 분야의 전문가들 사이에서조만간 반도체의 집적도에 한계가 닥치리라는얘기가 공공연히 돌았던 것이 고민의 중요한 계기였다. 대안은 나노기술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는 추측이 막연하게 떠돌고 있었다. “나노기술과 반도체의 접합지점을 찾기 위해관련 연구논문을 처음부터 샅샅이 다시 뒤져 검토했어요. 진정한 의미의‘re-search’를 제대로 해본 느낌이었죠. 결론은 나노 수준의 반도체 소자를 만들 수 있고, 또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새로운 분야였기에 획기적인 나노소자를 만들려면 그야말로 장기적인투자가 필요했다.
기업체 소속인 삼성종합기술원으로서는 아무래도 부담이 많이 가는 분야였다. 이 단장은‘심증은 있되 물증이 없어’과감한 장기 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한국 정부가1999년부터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을 시작, 10년이라는 장기적 안목을 갖고 투자할 만한 분야를 찾고 있었다. 이 단장의 연구계획서는 천만다행으로 채택됐다. 다만 엄청난 부담감이 추가됐다.
당시 과학기술부가 나노소자 앞에‘테라급’이라는 말을 넣으라고‘강권’했기 때문이다. 이 단장이 원래 목표로 삼은 수준보다 4배나 뛰어난 성능을 실현시켜야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선진국들이 2004년에야 표방하기 시작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단장으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그리고 마침내2000년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이 대장정의막을 올렸다.“정말 돈키호테식으로 목표를 잡고 뛰어들었습니다.
모든 세부사업의 목표는 오로지 테라급에 맞춰졌죠. 아무리 좋은 기초연구가 있다 해도 테라급과 관련되지 않으면 무시할 수밖에 없었어요.”정부와 기업이 공동으로 일궈낸 낸드플래시메모리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단은 보통 10년을 세 단계로 나눠 평가를 받는다. 이 단장은 사업의 성격상 당연히 3단계에서‘대박’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1단계는‘세계 최초, 최고’의 원천기술을확보하고, 2단계는‘세계를 이끄는’기술개발 체제를 구축한 후, 3단계에서‘세계를 바꾸는’성과를 내겠다는 사업단의 단계별 성취목표는 이런배경에서 나왔다.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크게 달랐다.
1단계 사업이 마무리될 즈음 외부의 질타가 시작됐다. 내용은 한 마디로‘그 정도 투자를 하는데 왜 아직도가시적인 성과가 없는가’였다. 특히 국회에서‘사업의 목표가 잘못 설정됐다’거나‘단장을 교체해야 한다’는 등 성토가 이어졌다. 1년 사업예산이 10억원, 20억원씩 삭감되면서‘자식 같은’세부과제들의 일부를 포기해야 했다.“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운이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확신이 있었고, 좀더 지켜보면 확실한 성과가 나온다고 계속 역설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한편으론 억울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스스로를 더욱채찍질하는 계기가 됐죠.”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날 조짐은 중반부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기업체들이 사업단의 연구개발성과에 점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이 단장이 언급한 두 번째 성공 요인인‘기업과의 적극적인 연계’가 가시화되던 시점이었다.전체 사업의 일환으로 이 단장의‘친정’격인삼성종합기술원이 개발한 메모리소자(CTF)에 대해 삼성전자가 반응을 나타낸 것이 대표 사례이다. 삼성전자는 2004년부터 이 분야에 대해 연구개발을 시작하더니 이듬해에는 삼성종합기술원의 연구인력 8명을 모두 데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2006년 9월 삼성전자가‘세계 최초 40나노미터 32기가 낸드플래시’를 개발했다고 밝혀 세계를 놀라게 했다.“정부와 기업의 성공적인 협력체계를 보여주는모범 사례라고 봅니다. 정부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해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기업이 이를 활용해 제품으로 만들어낸 것이죠.”이 기술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매우 막대하다고전망됐다. 2008년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낸드플래시메모리가 자그만치 16조9000억원의 경제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포함해 사업단 전체의 경제효과는 22조원이라고 평가됐다. 이 단장 스스로도깜짝 놀란 수치였다.
히트상품 개발, 계속 진행중
이 단장의 예견처럼 사업단은 후반부로 갈수록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현재 기업들이 낼 기술이전료 282억원은 모두 사업의 3단계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나마 처음에는 4억원에서 출발한것이‘순식간에’엄청나게 불어난 것이다.기업의 관심이 증가했다는 말은 사업단의 많은연구성과가 곧바로 제품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실용성이 강하다는 의미이다. 최근에는 LG이노텍이‘대박’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사업단의 한과제로 광 통신연결망의 등장에 대비한 광 인쇄회로기판(PCB) 기술이 개발돼 왔는데, 3단계에서 LG이노텍이 참여해 관련 시제품을 만들어냈다. 현재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이 시제품을 선보이고 있는데 반응이 굉장하다는 전언이다.“여전히 아쉬움은 남습니다. 사업단장으로서가장 안타까운 일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를 냈지만 기존의 평가기준에 따르다보니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한 경우입니다.”대표적인 사례가 나노전자소자 제작을 위한 무손상 식각기술을 개발한 일이었다.
국내 한 연구팀이 발표한 이 기술은 2007년도 판 반도체기술국제 로드맵(ITRS)에서‘전세계가 추진해야 할표준’으로 높게 평가받았다. 또 굴지의 외국연구소 연구팀이 접촉해 현재 공동으로 실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반응은 미지근했다.“국내의 평가 기준이 주로‘사이언스’‘네이처’같은 인지도 높은 국제저널에 얼마나 많은논문을 내느냐에 맞춰진 탓입니다. 하지만 실용화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기준이 달라져야 합니다. 비록 저널의 인지도가 일반 과학기술계에서상대적으로 낮다 해도 관련 전문분야에서는 얼마든지 세계적인 수준으로 인식되거든요. 또한 논문 외에도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인 국제대회에서 인정받는 일도 평가 기준에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이 단장은 또다른 대장정의 길을 모색 중이다. 지난 10년간의 경험을 살려‘더 잘할 수 있는’자신감이 어느 정도 붙은 게 사실이다. “아직 성에 다 안 찼습니다. 연구를 통해‘대박행진’할 만한 일들이 많이 남아있는 걸요. 새로운 획기적인 아이템 구상으로 쉴 틈이 없습니다.”
10년간 국가가 사업단에 지원한 비용은 904억원. 4400여명의 초대형 식구가 모여 연구논문 1027건, 특허출원 1251건의 성과를 올렸다.사업단이 연구성과를 기업에 이전해온 결과 기업이 정부에 제출하겠다고 약속한 기술이전료는 총 282억원에 달한다.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단 가운데 최고의‘기술이전료 성적’을 거둔것이다.하지만 이 단장은 그 길고 긴 얘기를 산전수전 다 헤쳐온 노련한 수장답게 몇 가지의 사례를 통해 간략히 요약해냈다. 그가 자신 있게‘대박’과‘성공’이란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이 사업단의 객관적인 성과사례는 정부가10년간 1000억원 이상 과감하게 투자해온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내릴 한 가지 계기로 작용할 것 같다. 오로지 테라급에 초점을 맞추다이 단장이 말하는 사업단의 성공 요인 첫 번째는‘미래에 대한 정확한 전망과 장기적 투자’로요약할 수 있다. 이 단장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금속과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카네기멜론대와 IBM Watson 연구소의연구원 생활을 거쳐 1990년대 초반부터 삼성종합기술원 신소재연구실을 이끌고 있었다.
당시 이 단장은 반도체 제작에 몰두하다 20~30년 뒤자신이‘먹고 살’연구주제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반도체 분야의 전문가들 사이에서조만간 반도체의 집적도에 한계가 닥치리라는얘기가 공공연히 돌았던 것이 고민의 중요한 계기였다. 대안은 나노기술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는 추측이 막연하게 떠돌고 있었다. “나노기술과 반도체의 접합지점을 찾기 위해관련 연구논문을 처음부터 샅샅이 다시 뒤져 검토했어요. 진정한 의미의‘re-search’를 제대로 해본 느낌이었죠. 결론은 나노 수준의 반도체 소자를 만들 수 있고, 또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새로운 분야였기에 획기적인 나노소자를 만들려면 그야말로 장기적인투자가 필요했다.
기업체 소속인 삼성종합기술원으로서는 아무래도 부담이 많이 가는 분야였다. 이 단장은‘심증은 있되 물증이 없어’과감한 장기 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한국 정부가1999년부터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을 시작, 10년이라는 장기적 안목을 갖고 투자할 만한 분야를 찾고 있었다. 이 단장의 연구계획서는 천만다행으로 채택됐다. 다만 엄청난 부담감이 추가됐다.
당시 과학기술부가 나노소자 앞에‘테라급’이라는 말을 넣으라고‘강권’했기 때문이다. 이 단장이 원래 목표로 삼은 수준보다 4배나 뛰어난 성능을 실현시켜야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선진국들이 2004년에야 표방하기 시작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단장으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그리고 마침내2000년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이 대장정의막을 올렸다.“정말 돈키호테식으로 목표를 잡고 뛰어들었습니다.
모든 세부사업의 목표는 오로지 테라급에 맞춰졌죠. 아무리 좋은 기초연구가 있다 해도 테라급과 관련되지 않으면 무시할 수밖에 없었어요.”정부와 기업이 공동으로 일궈낸 낸드플래시메모리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단은 보통 10년을 세 단계로 나눠 평가를 받는다. 이 단장은 사업의 성격상 당연히 3단계에서‘대박’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1단계는‘세계 최초, 최고’의 원천기술을확보하고, 2단계는‘세계를 이끄는’기술개발 체제를 구축한 후, 3단계에서‘세계를 바꾸는’성과를 내겠다는 사업단의 단계별 성취목표는 이런배경에서 나왔다.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크게 달랐다.
1단계 사업이 마무리될 즈음 외부의 질타가 시작됐다. 내용은 한 마디로‘그 정도 투자를 하는데 왜 아직도가시적인 성과가 없는가’였다. 특히 국회에서‘사업의 목표가 잘못 설정됐다’거나‘단장을 교체해야 한다’는 등 성토가 이어졌다. 1년 사업예산이 10억원, 20억원씩 삭감되면서‘자식 같은’세부과제들의 일부를 포기해야 했다.“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운이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확신이 있었고, 좀더 지켜보면 확실한 성과가 나온다고 계속 역설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한편으론 억울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스스로를 더욱채찍질하는 계기가 됐죠.”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날 조짐은 중반부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기업체들이 사업단의 연구개발성과에 점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이 단장이 언급한 두 번째 성공 요인인‘기업과의 적극적인 연계’가 가시화되던 시점이었다.전체 사업의 일환으로 이 단장의‘친정’격인삼성종합기술원이 개발한 메모리소자(CTF)에 대해 삼성전자가 반응을 나타낸 것이 대표 사례이다. 삼성전자는 2004년부터 이 분야에 대해 연구개발을 시작하더니 이듬해에는 삼성종합기술원의 연구인력 8명을 모두 데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2006년 9월 삼성전자가‘세계 최초 40나노미터 32기가 낸드플래시’를 개발했다고 밝혀 세계를 놀라게 했다.“정부와 기업의 성공적인 협력체계를 보여주는모범 사례라고 봅니다. 정부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해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기업이 이를 활용해 제품으로 만들어낸 것이죠.”이 기술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매우 막대하다고전망됐다. 2008년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낸드플래시메모리가 자그만치 16조9000억원의 경제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포함해 사업단 전체의 경제효과는 22조원이라고 평가됐다. 이 단장 스스로도깜짝 놀란 수치였다.
히트상품 개발, 계속 진행중
이 단장의 예견처럼 사업단은 후반부로 갈수록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현재 기업들이 낼 기술이전료 282억원은 모두 사업의 3단계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나마 처음에는 4억원에서 출발한것이‘순식간에’엄청나게 불어난 것이다.기업의 관심이 증가했다는 말은 사업단의 많은연구성과가 곧바로 제품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실용성이 강하다는 의미이다. 최근에는 LG이노텍이‘대박’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사업단의 한과제로 광 통신연결망의 등장에 대비한 광 인쇄회로기판(PCB) 기술이 개발돼 왔는데, 3단계에서 LG이노텍이 참여해 관련 시제품을 만들어냈다. 현재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이 시제품을 선보이고 있는데 반응이 굉장하다는 전언이다.“여전히 아쉬움은 남습니다. 사업단장으로서가장 안타까운 일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를 냈지만 기존의 평가기준에 따르다보니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한 경우입니다.”대표적인 사례가 나노전자소자 제작을 위한 무손상 식각기술을 개발한 일이었다.
국내 한 연구팀이 발표한 이 기술은 2007년도 판 반도체기술국제 로드맵(ITRS)에서‘전세계가 추진해야 할표준’으로 높게 평가받았다. 또 굴지의 외국연구소 연구팀이 접촉해 현재 공동으로 실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반응은 미지근했다.“국내의 평가 기준이 주로‘사이언스’‘네이처’같은 인지도 높은 국제저널에 얼마나 많은논문을 내느냐에 맞춰진 탓입니다. 하지만 실용화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기준이 달라져야 합니다. 비록 저널의 인지도가 일반 과학기술계에서상대적으로 낮다 해도 관련 전문분야에서는 얼마든지 세계적인 수준으로 인식되거든요. 또한 논문 외에도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인 국제대회에서 인정받는 일도 평가 기준에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이 단장은 또다른 대장정의 길을 모색 중이다. 지난 10년간의 경험을 살려‘더 잘할 수 있는’자신감이 어느 정도 붙은 게 사실이다. “아직 성에 다 안 찼습니다. 연구를 통해‘대박행진’할 만한 일들이 많이 남아있는 걸요. 새로운 획기적인 아이템 구상으로 쉴 틈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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