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나노기술 발전을 위한 시민자문회의 : 제5회 STS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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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기관
- 저자
- 나노R&D
- 종류
- 나노기술분류
- 발행일
- 2009-09-14
- 조회
- 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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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나노기술의 발전”을 주제로, 지난 8월 18일부터 21일까지 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협동과정과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최한 제5회 STS 아카데미가 고려대학교 아산이학관에서 열렸다. 전체 프로그램은지난 해에 이어 과학기술의 시민참여 모델 중 하나인 시민자문회의(planning cell)를 변형하여 적용했다.
STS 아카데미의 기본 취지
STS는 학문적 개념으로는 과학기술학(Science Technology Studies)을, 사회운동적 개념으로는 과학기술과 사회(Science, Technology & Society)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두 개념 모두 기본적으로 과학기술은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의 관계 속에서 규정되며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될 수 있는 대상이라고 본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STS 아카데미는 바로 이러한‘STS’관점을 기반으로 구성적 PUS(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 대중의 과학이해)의 현실 구현에 목적으로 두고 2004년 시작된 연구사업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과학기술문화는 일반대중을 과학기술 소양(literacy)이 결핍된 존재로 간주하고, 과학기술 전문가와 대중의 관계 또한 과학기술 관련 지식의 유무를 기준으로 이분법적으로 분리시켜 왔다. 과학기술 커뮤니케이션 또한 일방향적으로 과학기술 전문가가 대중에게 관련 지식을 수직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전통적 과학기술문화가 이분법적이고 수직적 구조의 과학기술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수행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과학기술을 사회와 분리된 가치중립적이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인‘사실(fact)’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항들은 과학기술 전문가 집단이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기고, 대중은 단지 그런 전문가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이분법적이고 수직적인 과학기술 커뮤니케이션으로는 현대 과학기술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가 없다. 배아줄기세포, 광우병, 조류독감 등 최근 등장하는 과학기술 관련 문제들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의 요소와 맞물려 다양한 이해관계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즉, 현대 과학기술은 불확실성이 점차 증가해졌고, 과거와 같이 어떤 정확한 과학기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전문가를 찾는 것도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에 구성적 PUS는 정통적인 과학기술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아닌 전문가와 일반대중이 선험적인 어떤 전문가(expert)로서의 지위를 고수하지 않고, 대등한 위치에서 상호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교류하는 과정에서 전문성(expertise)을 키워 당면한 과학기술 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장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과학기술 문제에 일반대중을 참여시키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무엇보다 일반 대중이 자신의 삶의 경험에서 얻는 국지적 지식(local knowledge)을 존중하고, 이들에게 과학기술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충분히 전문가와 함께 숙의할 수 있는(deliberative) 장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주장을 자칫 반(anti)과학주의, 반전문가주의로 오해할 수도 있는데, 결코 구성적 PUS나 과학기술의 시민참여가 기존의 전문가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을 무시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기존의 과학기술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는 현대 과학기술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들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직시하고 실천적인 대안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STS 아카데미 또한 여기에 공감하고, 21세기 한국적 맥락에 적합한 과학기술 커뮤니케이션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적용해 보고자 하는 학문적인 실천 움직임이다.
STS 아카데미 계보
STS 아카데미 첫 회는 지금의 시민자문회의 방식과 달리‘과학과 사회’라는 조금은 포괄적인 주제를 걸고, 2박 3일 동안 여름캠프로 구성됐다. 캠프이니 만큼 경기도에 위치한 교육원에서 프로그램 진행자를 포함한 참여자 모두의 숙식을 전제로 신청자를 모집했다. 대신, 참여대상은 시간적·공간적 제약 때문에 대학생과 대학원생으로 한정했다.
캠프 프로그램은 크게 STS 일반 강연, 생명공학 등 총 4개의 전체 강연과‘배아연구’를 세부 주제로 한 선택식 강연, 그리고 조별 발표 등으로 구성됐다. 숭실대 연극 동아리팀과 함께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창작 과학연극도 무대에 올렸다. 참여자들의 관심과 참여도는 기대 이상으로 높았다.
2005년과 2007년에 진행된 2회, 3회 STS아카데미는 캠프가 아닌, 4일간의 강연식 프로그램으로 이뤄졌다. STS에 대한 참여자들의 사전 지식수준과 관심을 고려해서, 오전에는 일반강좌, 오후에는 심화 강좌로 나눴다.
지금과 같은 시민자문회의(Planning Cell) 방식은 작년부터 시작됐다. 시민자문회의는 독일을 중심으로 서유럽에서 시작됐는데, 합의회의 등의 과학기술 시민참여모델들이 간헐적이기는 하지만 두 달 이상 참여자들이 해당 주제에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참여자들에게는 상당한 부담감을 준다.
이런 점에서 시민자문회의는 행사 기간을 4일 정도로 최소화했다는 점에서 기존 시민참여모델과는 차이가 있다.
행사 기간이 4일로 단축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시민자문회의가 대체로 자치구를 중심으로 해당 지역의 현안 문제를 논의한다는 점과 관련된다. 무작위 추출 방식으로 참여자들을 모집한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사전에 해당 질문과 관련된 논의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련 정보를 알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STS 아카데미와 같이 전국 규모의 행사로 주제는 특정 지역이나 특정 집단에만 관련 되지 않은 경우에, 기존의 시민자문회의 방식을 그대로 도용할 수는 없었다. 이 점을 고려해서 사전에 아카데미에서 논의할 주제를 공지하여 관심있는 만 19세 이상의 참여자들을 모집했다.
시민자문회의 방식을 적용한 STS 아카데미는 4일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되며, 총 6인의 관련 전문가로부터 해당 주제에 대한 강연을 듣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전문가에는 철학자, 사회학자와 같은 인문학자들을 비롯한 시민단체 활동가, 과학자, 공학자 등 포함되는데, 이것은 참여자들이 해당 논의 주제에 관한 다양한 관점과 쟁점들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데 그 목적이 있다. 참여자들이 사전에 아무리 해당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구체적인 내용까지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대체로 하나의 관점에 기대어 문제에 접근하기 때문이다. 전문가 구성이 중요한 이유는, 참여자들이 전문가 강연 중 들었던 쟁점들을 기반으로 시민자문회의 소그룹토론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STS 아카데미는 매일 전문가 강연과 함께 5-6인으로 구성된 소그룹 시민자문단에서 숙의적 토론 과정을 진행했다. 소그룹 구성은 연령, 성별, 직업, 지역 등을 고려해 구성했다. 따라서 참여자들은 다양한 배경과 지식을 지닌 사람들과의 소그룹 숙의 과정 속에서 스스로 사회적 학습을 하고, 상호 토론을 통해 해당문제에 관한 결론을 제시하게 된다.
지속가능한 나노기술 시민자문회의 과정과 결과 STS 아카데미 본 프로그램 진행에 앞서 시민자문회의 소그룹 토론 주제로 나노기술의 정의, 나노기술의 혜택과 위험성, 나노기술의 윤리적 쟁점, 나노기술의 시민참여 등이 제시됐다. 이것은 시민자문회의 구성에 필수조건인 외부 기관 혹은 단체 등에서 일반시민에게 자문을 요청하는 질문을 대신한 것으로, 마지막 날 각 소그룹 시민자문단은 자신들이 논의한 결과에 대해 시민자문회의 보고서를 제출하고 이를 40분 정도로 발표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단, 보고서 형식은 참여자들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룹 내부에서 자유롭게 정하도록 했다.
나노기술 꼴라주
첫날 참여자들에게 각종 잡지와 필기도구를 제공한 후, 시민자문회의 소그룹별로 1시간 내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나노기술에 대한 이미지를 꼴라주로 표현해 줄 것을 요청했다. 꼴라주 작업을 통해 사전에 참여자들이 나노기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 기존의 정형화된 형식이아닌 꼴라주를 선택한 이유는 연령, 성별, 직업이 다양한 참여자들이 서로의 생각을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그림과 같은 이미지가 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참여자들이 꼴라주를 통해 표현한 나노기술에 대한 이미지는 약간의 차이는 있었으나 대체로 작은 사이즈의 나노에 대한 이미지와 나노화장품과 탄소나노튜브가 다수였다. 탄소나노튜브의 경우, 꼴라주에 앞서 진행된 이호성 박사의 나노기술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들었던 것이 영향을 준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를 제외하고 참여들이‘나노기술’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나노 크기와 나노화장품 정도라고 보면 된다.
일반대중들은 나노기술과 관련된 구체적인 연구와 적용 분야 등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단지 나노기술이라는 단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광고 속 이미지가 전부였다.
그리고 나노화장품과 같은 광고에서 강조하는 나노기술의 특징은 깊은 피부 속까지 뚫고 들어가 화장품의 흡수를 높이는‘나노’사이즈 그 자체였다. 따라서 참여자들이 인식하는 나노기술은 나노 사이즈와 나노화장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반대중이 인식하는 한국 나노기술의 현주소라 하겠다.
전문가와 일반대중의 대화
나노기술을 다각도로 접근하기 위해 강연자는 인문사회계 3인, 이공계 3인으로 구성했다. 인문사회계로는 서울 시립대 철학과 이중원 교수, 가톨릭대 사회학과 이영희 교수와 고려대 과학기술학연구소 김동광 교수가, 이공계로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이호성 박사, 연세대 나노메디컬 국가핵심연구센터 유경화 소장, 그리고 서울대화학생물공학부 현택환 교수가 강연을 맡았다.
모든 강연시간은 1시간씩이었고, 이 중 발표에 40~45분을, 질의응답에 15~20분을 배정했다.
제일 먼저 강연한 이호성 박사는“나노 세계로의 초대”라는 제목으로 나노기술의 일반적인정의 및 특징을 설명했고, 이중원 교수는 나노윤리 중 나노기술의 ELSI 프로그램을, 유경화 소장은 의학 분야에서의 나노기술과 그 전망 등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영희 교수는 나노기술의 사회적 차원을 고려한다는 의미의 나노기술 거버넌스를, 김동광 교수는 위험 커뮤니케이션과 시민참여를 주제로 나노기술을 포함해 새롭게 등장한 신기술(emerging technology)의 불확실성과 그로 인한 시민참여를 통한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성에 대해 강연했고, 마지막으로 현택환 교수는 실제 현장에서 나노기술을 연구하는 과학기술자로서 나노기술 연구의 현실에 대해서 발표했다.
참여자들이 대체로 관심을 갖고 질문이 많았던 내용은 나노기술의 사용분야와 미래 적용 가능 분야와 그 방법, 사회에 미칠 영향 등이었다.
나노기술은 그 역사가 채 20년이 되지 않고 아직도 개발 중인 분야인데다가 향후 그 적용 가능분야가 다양하기 때문에, 참여자들에게는 일단‘나노기술’이라는 말 자체가 손에 와 닿지 않아 보였다. 참여자 중에는 실제 나노기술 전공자도 있었는데, 이들이 인식하는 나노기술 또한 자신이 연구하는 세부 분야의 나노기술 그 자체일 뿐, 나노기술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는 소위 다른 참여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참여자들 또한 특히 현직에서 나노기술을 연구하는 강연자들에게 질문을 많이 했고, 강연자들 또한 시간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쉽고 자세하게 설명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즉, 나노기술을 둘러싼 전문가와 일반대중과의 대화는 단지 일반대중에게 나노기술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도 그 대화 속에서 자신이 하는 나노기술을 다양한 각도에서 다시금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겠다.
소그룹 시민자문단 회의
시민자문단 회의는 성별, 직업, 연령 등을 고려해 7인 내외의 소그룹으로 나눠 진행했고,각 자문단에는 촉진자(facilitator)를 한 명씩 배치했다. 촉진자들에게는 참여자들이 필요로하는 자료와 물품을 공급하는 형식적인 의미에서 스태프의 역할과 함께 실질적으로 토론을 원활하게 진행하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도 주어졌다. 따라서 참여자의 요청이 있을 때에는 경우에 따라 토론에 개입해 사회자 역할을 맡을 수 있는데, 이때 토론의 중심은 참여자여야 하고 촉진자는 소극적인 개입만이 허용됐다. 그리고 촉진자들에게는 매일 어떤 방식으로 소그룹 시민자문단 회의가 진행됐는지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그 결과, 첫날 이뤄진 회의는 낯선 사람들과 처음으로 접해본 시민자문회의 방식에 대한 어색함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활발한 토론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나노기술에 관해 네 가지 토론주제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어떻게 토론을 시작해야 할지 다소 막막해 하는 분위기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토론보다는 자문단 내부에서 각자 자신이 알고 있는 나노기술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회의가 진행됐다.
그러나 둘째 날 회의는 첫날과는 사뭇 다르게 보다 심도있는 논의가 오갔고, 일부 시민자문단에서 나노기술의 향후 발전 가능성을 둘러싸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참여자와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참여자간에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참여자의 경우 나노기술이라는 외부적인 요인이 의료기술이건 화장품이건 간에 인간의 몸 내부로 들어온다는 점을 크게 우려했다. 인간의 몸은 진화의 과정을 통해 지금과 같은 모습을 지니게 됐는데, 나노기술과 같이 작은 사이즈의 외부기술이 들어와서 몸의 기작을 무너지게 할 것이 라고 보기 때문이었다.
셋째 날은 토론들은 전반적인 나노기술의 향후 응용분야와 함께 그것이 사회에 가져올 파장과 위험성에 대한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특히 눈에 띄는 특징이라고 한다면, 나노기술에 대한 인식론적인 논의들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나노기술을 의학에 접목해 장애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고 할 때, 그 허용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지, 설사 의학적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추후에는 신체적 능력 향상을 목적으로까지도 사용될 텐데 그렇다면 신체적 능력을 포함해 인간의 몸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인가에 관한 심도 깊은 토론을 진행하기도 했다. 더불어 나노기술과 자본주의를 연결지어 나노기술의 미래가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이바지할 수 있지만, 이것은 부유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즉 나노기술로 인해 기존의 사회적 불평등 구조가 더욱 심화될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또 일부에서는 참여자들을 포함해 일반대중들이 나노기술에 대한 관심이 적고 관련 지식도 부족한 이유에 대해 논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4일이라는 시간은 나노기술을 토론하기에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시민자문단 회의를 통해 알 수 있었던 사실은, 하루하루 토론이 거듭될수록 참여자들의 토론은 나노기술의 인식론적 측면을 논의할 만큼 그 깊이를 더해갔고 나노기술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져갔다. 한 시민자문단 그룹의 경우는 공식적인 토론 일정이 끝나고도 나노기술에 대해 지속적으로 토론할 수 있도록, 촉진자에게 STS 아카데미 홈페이지에 카페를 개설해 줄 것을 요청할 정도였다.
참여자들이 나노기술에 대해 뜨거운 관심을 표명한 데에는 전문가 강연의 영향도 컸지만, 무엇보다 소그룹 규모의 지속적인 토론의 영향이 컸다. 이는 참여자들의 지속적인 높은 출석률이 뒷받침한다. 셋째 날 같은 경우, 전문가 강연도 없이 오로지 시민자문단 토론으로만 이뤄졌을 뿐만 아니라,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졌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참여자들이 토론에 참여했던 것이다.
넷째 날 시민자문단 회의에서는 지금까지 논의됐던 내용을 정리하고 시민자문회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일부 자문단에서는 마지막까지 어느 범위까지 나노기술을 허용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첨예한 논쟁을 계속하기도 했다. 결국 이 자문단은 각자의 의견 모두를 보고서에 삽입하는 걸로 그간의 논의를 정리했다.
시민자문회의 최종 보고서
시민자문회의 최종 보고서는 각 시민자문단에서 그 형식과 내용을 정해 정리하도록 했는데, 양식은 정형화된 보고서를 비롯해 연극, 꽁트 등 그 어떤 것도 가능했다.
보고서 형식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게 한 것은, 직업이 다양한 참여자들에게 어떤 정형화된보고서 작성하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부분의 시민자문단이 파워포인트 형식으로 개괄적인 보고서를 작성했고, 한 토론팀에서는 역할극을 꾸몄다.
시민자문단에서 내놓은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역할극을 꾸몄던 자문단은 정체성을 찾아가는 나노를 주제로, 각자 나노, 민바이쳐(의사), 안득도(철학자), 용교수(공학자), 김사회(stser), 새봄(일반시민) 등의 역할을 맡아 상황극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나노의 기본 정의는 10-9으로 매우 간단하지만, 이를 실제 과학기술에 적용할 경우 나노기술은 매우 다양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이를 평가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나노가 만나는 사람 중 처음부터 나노기술에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하는 인물을 철학자로설정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지속가능한 나노기술에 대한 인문사회학자들의 논의에 대한 일반대중의 관점이기도 하다. 즉,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철학적, 사회학자들의 나노기술에 대한 논의를 나노기술의 개발 자체를 부정하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한 시민자문회의 보고서는 나노기술의 시민참여의 정당성과 관련해서 나노기술은 살상무기로 사용될 우려뿐만 아니라 생태계 파괴와 나노기술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연구원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러한 나노기술의 위험성은 전문가들의 논의만으로는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어려우므로 나노기술의 시민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이러한 시민참여 방식은 정책위원회, 연구결과 인증제도, 시민참여 인증마크, 잠재위험성 연구 의무화, 교육 홍보활동, 나노세금, 피해소송 재판 제도 등을 통해 다각도로 진행되어야함을 주장했다.
또 다른 시민자문회의 보고서는 나노기술의 정의에 관한 인식론적인 측면을 언급했다. 즉, 사회적으로 나노기술의 필요성과 향후 나노기술이 이 사회에서 차지할 비중 등을 말하지만, 실제로 이들 논의를 진행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나노기술의 범위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나노기술을 접하는 일반대중들이 나노기술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노기술에 대해 명확하게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미궁에 빠지는 듯한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음에 대한 우려라 하겠다. 더불어 이것은 향후 나노기술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올 수 있는 오해와 혼란에 대한 지적이기도 했다.
이렇듯 시민자문회의 방식을 적용해 4일간 진행된 이번 STS 아카데미를 통해, 참여자들은 지속가능한 나노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나노기술의 기본적인 정의뿐만 아니라 혜택과 위험성,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한 다각적인 논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시민자문단에서는 나노 그 자체가 지닌 모호한 특성과 더불어 나노기술이 가져다 줄 혜택과 더불어 증가할 사회에 가져올 여러 가지 위험성을 간과해서는 안됨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한 전문가 강연을 비롯한 교육이 필요하며, 동시에 일반대중이 다양한 방식으로 나노기술 정책 수립에 참여할 필요성이 있음을 제기했다.
사실 이러한 주장들은 기존의 나노기술 전문가들이 제기한 논의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사항은 이러한 주장들이 바로 일반대중들의 숙의 과정 속에서 도출된 결론이라는 점이다. 나노기술의 지속가능한 발전은 결코 전문가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이다. 여기에는 일반대중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올해 STS 아카데미는 바로 이 점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점은 향후 나노기술에 관한 정책 수립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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