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세계 최강 '울트라 블랙' 생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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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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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강의 검은색’이라는 뜻을 가진 울트라블랙(ultra-black)은 엄밀한 과학적 정의는 아니지만 보통 빛 반사율이 0.5% 이하인 검은색을 일컬음. 흥미롭게도 지구상의 생명체 중에도 자연적으로 이런 울트라블랙을 띠는 종이 있음. 그중 육지에서 가장 검은 나비와 바다에서 가장 검은 아귀를 소개함.
● 육지의 강자, 나비 ‘캐토네프헤레 안티노에’ (반사율 0.06%)
육상에는 다양한 검은 생명체가 있음. 가령 검은 깃털을 가진 극락조는 350~700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파장의 가시광선을 깃털에 쪼였을 때 반사율이 0.05~0.31%임. 공작새의 깃털과 비슷한 무늬를 가져 공작 거미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마라투스 카리에(Maratus karrie) 수컷은 같은 빛에서 반사율이 약 0.35%임. 두 동물 모두 들어오는 빛의 99% 이상을 흡수하는 ‘빛의 감옥’ 역할을 함.
그런데 여기에 도전장을 내민 동물이 있음. 바로 나비임. 미국 듀크대 연구팀은 비블리스아과와 호랑나비과 등 총 4개의 분류군에 속하는 검은 나비 14종의 빛 반사율을 조사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3월 10일자에 발표했음.(doi: 10.1038/s41467-020-15033-1)
연구팀이 이들 나비의 날개에 500nm 파장의 가시광선을 조사한 결과 14종 중 10종이 울트라블랙을 띠는 것으로 나타났음. 이들의 빛 반사율은 0.06~0.4%로 다양했음. 그중 반사율이 0.06%로 가장 낮은 종은 비블리스아과(科)의 캐토네프헤레 안티노에(Catonephele antinoe)였음.
연구팀은 이런 나비들이 어떻게 울트라블랙을 만들어내는지 날개의 미세구조를 분석했음.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미세구조의 형태를 관찰하고, 유한차분시간영역(FDTD)이라는 수치 분석기술을 이용해 날개 표면의 미세구조를 제거해 빛 반사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조사했음.
논문의 제1저자인 알렉산더 데이비스 듀크대 생물학과 박사과정 연구원은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여러 종 사이에서 나타나는 (날개 표면의) 구조적 차이를 세부적으로 분석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음.
연구팀의 분석 결과, 빛 반사율이 낮고 빛 흡수율이 높은 종은 날개 표면의 미세구조가 더 가파르고 깊게 패인 것으로 나타났음. 날개 표면 위에 수직으로 나란히 형성된 미세구조의 깊이가 빛 반사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일반 검은색 나비보다 3~16배가량 더 깊었음. 이런 미세구조가 없다고 가정하면 빛 반사율은 7~28배 크게 상승한다는 계산이 나왔음.
데이비스 연구원은 “온몸이 울트라블랙으로만 이뤄진 나비 종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며 “울트라블랙이 날개에 알록달록한 문양과 섞여 날개가 더욱 도드라져 보이도록 진화했을 것”이라고 추정했음.
● 최강자는 바로 나, 심해어 ‘오네이로데스’ (반사율 0.044%)
바다에서 가장 검은 생명체는 가뜩이나 어두운, 빛이 거의 미치지 않는 심해에 살고 있음. 데이비스 연구원이 속한 듀크대 연구팀과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 공동 연구팀은 7월 16일 아귀 속(屬) 심해어인 오네이로데스(Oneirodes sp.)의 빛 반사율이 0.044%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했음. 빛 반사율이 0.06%인 나비인 캐토네프헤레 안티노에보다도 더 검은 셈임. (doi: 10.1016/j.cub.2020.06.044)
연구팀은 북아메리카로 둘러싸인 멕시코만과 미국 캘리포니아주 해안에 위치한 몬터레이만에서 수심 1.6km에 서식하는 심해어 39종을 분석했음. 연구팀은 심해어를 어망과 원격조종 로봇으로 포획해 선상에서 곧바로 SEM 분석을 실시했음.
분석 결과, 39종 중 16종은 울트라블랙 수준의 반사율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음. 480nm의 빛을 쪼였을 때 오네이로데스의 반사율은 0.044%로 가장 낮았고, ‘태평양의 검은 용’이라는 별칭을 가진 이디아칸수스 안트로스토무스(Idiacanthus antrostomus)의 빛 반사율은 약 0.1%로 그 뒤를 이었음.
데이비스 연구원은 “가시광선 영역의 모든 파장대로 확대 분석하면 오네이로데스의 평균 빛 반사율은 0.051%”라며 “지상의 극락조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음.
연구팀은 울트라블랙을 띠는 심해어들의 피부 시료를 가져와 투과전자현미경(TEM)으로 확대 관찰하고, FDTD로 피부 내부 구조와 빛 반사율의 관계를 조사했음.
심해어의 피부 세포질 내에는 멜라노솜(melanosome)이라는 색소를 만들어내는 특수한 구조가 있고, 멜라노솜의 형태나 배열은 종마다 크게 다름. 보통 검은색을 띠는 심해어는 멜라노솜이 작고 동그란 형태이고 멜라노솜 사이사이에 틈이 존재하는 반면, 울트라블랙을 띠는 심해어는 크고 길쭉한 멜라노솜이 매우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음.
연구팀은 심해어가 포식자의 눈을 피하고, 먹이 사냥 중에 더 은밀하게 움직이기 위해 빛 반사율이 극도로 낮은 울트라블랙 피부를 갖도록 진화했을 것이라고 추정했음.
● 현존 최강 울트라블랙 소재, ‘반타블랙’ (반사율 0.045%)
연구자들이 울트라블랙을 연구하는 건 단순히 호기심 때문만은 아님. 데이비스 연구원은 “특히 나비의 날개는 울트라블랙을 낼 수 있는 구조를 가지면서도 얇고 견고하다”며 “나비의 날개를 모방해 신소재를 찾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음.
나비 날개의 미세구조는 수직으로 나란한 나노튜브 배열(Vertically aligned nanotube array), 즉 나노튜브 여러 개가 수직으로 나란히 배열된 구조임. 여기서 앞글자를 따 극강의 검은색을 ‘반타블랙(Vantablack)’이라고 부르기도 함.
반타블랙이라는 명칭은 2014년 영국 기업인 서레이나노시스템스가 빛 반사율이 0.045%인 신소재를 개발하며 반타블랙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음.
반타블랙 소재는 현재 우주망원경이나 태양전지, 자동차 등에 유용하게 쓰임. 하지만 아직은 안정성 면에서 다소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음.
데이비스 연구원은 “탄소나노튜브의 경우 다루는 데 높은 온도가 필요해 제작이 까다롭고, 미세한 긁힘(마모)에 성질을 잃는 경우도 많다”며 나노튜브로 반타블랙을 구현하기가 어려운 이유를 설명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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