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나노기술에 대한 대중들의 공포를 우려하는 과학자들 Fearing the fear of nano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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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노R&D|나노문화
- 종류
- 나노기술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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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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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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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과학자들은 항상 일정 정도 대중들이 자신들의 과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러한 불편함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선입관에 근거하고 있다. 최근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지에 발표된 세 편은 과학에 대한 대중들의 태도에 대한 연구조사를 통해서 이러한 가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대중들은 무관심한 집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네덜란드의 트웬테 대학(University of Twente)의 과학사회학자인 아리에 립(Arie Rip)은 나노기술 내부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광범위한 ‘나노공포에 대한 공포(nanophobia-phobia)’를 발견했다. 즉, 과학적으로 무지한 대중들이 위험에 대해 어떻게 균형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이 비이성적이고 과장된 믿음으로 근거 없이 무책임한 여론에 의해 유망한 기술을 거부하게 된다고 것이다. 좀 더 세밀하고 세련된 분석을 통해서 대중들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는 각기 다른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밝혀져야 한다. 대중들은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기술과 위험에 대한 정보를 여과할 수 있다. 아마도 과학자들이 갖고 있는 가장 일반적인 관점은 기술에 대한 공포는 무지로부터 시작되고 사람들이 기술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됨으로써 대중들의 수용은 불가피하게 증가될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 예일법대의 댄 케이헌(Dan Kahan)과 그의 동료들은 이러한 현상을 친밀도 가설(familiarity hypothesis)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 나노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이번 연구자들이 발견한 것처럼 다소간 호의적인 입장으로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에 의존하고 있다. 자유시장와 사회엘리트의 권위를 인정하는 위계적 개인주의자(hierarchical individualist)의 경우 기술에 익숙해지면서 나노기술을 받아들인다. 반면에 평등적 공동체주의자(egalitarian communitarians)의 경우에는 많은 정보가 주어질수록 기술에 대해 익숙해지기보다는 좀 더 우려가 높아지는 경우이다. 또 다른 잘 알려진 선입관으로 미국의 대중들은 세련되지 않고 감정적이며 비즈니스에 우호적이며 기술의 열광자로 그려지고 있는 반면, 유럽인들은 녹색문제에 민감하고 기술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두 지역의 대중들의 나노기술에 대한 문제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의 산타 바바라와 영국의 카디프에서 대중토론을 통해 다루어졌다. 카디프 대학의 심리학자인 닉 피전 (Nick Pidgeon)과 동료들은 놀랍게도 두 그룹 사이에 기술에 대한 예상에서 전혀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나노기술이 보여주는 기대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지식이 부재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나노기술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혜택이 위험보다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물론 차이가 존재한다. 영국의 그룹은 나노기술의 잠재적인 위험과 과거 규제정책의 실패를 연관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유전자조작 작물이나 광우병, 구제역이 그것이다. 또한 미국은 좀 더 소비자의 가치를 중요시하며 영국에서는 공동체에 기반한 우려 사이에 차이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영국의 그룹은 나노기술의 잠재적인 의학적인 적용은 오직 부자들에게 혜택을 줄 뿐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케이헌의 연구에서 이러한 미국과 유럽의 차이는 각기 다른 정치적인 전망의 결과로, 위계적 개인주의자들이 미국에 더 많고 평등주의적 공동체주의가 영국에서는 좀 더 일상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국과 미국 사이에는 완전히 다른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종교의 역할이다. 줄기세포논쟁에서 미국의 대중들은 모든 기술에 대해 일관되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종교적인 태도는 여기에서 좀 더 중요하다. 미국 위스콘신-메디슨(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의 과학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디에트럼 슈펠 (Dietram Scheufele)와 연구자들은 종교는 나노기술에 대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실시한 전화조사를 통해서 높은 정도의 종교성은 “나노기술은 윤리적으로 수용가능하다”라는 서술에 대해 개인적으로 거부하는 경향과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적인 수준에서 유럽국가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나노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은 미국의 대중들에 비해 윤리적으로 수용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연구자들은 종교성에 따른 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연구가 조사한 것처럼 윤리적으로 수용가능하거나 수용할 수 없다는 점 사이의 특성을 단순하게 찾아낼 수 있는 나노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단일기술이 존재하는가의 문제이다. 심지어 나노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나노기술의 내용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의견을 갖고 있으며 대중들에게 제공되는 정보도 나노기술과 관련된 사업자나 환경론자 또는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사람들처럼 제공자들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매우 다르게 묘사된다. 친밀도 가설을 받아들이면서 케이헌의 연구진은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부족모델(deficit model)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즉, 주어진 정보에 따라 대중들은 새로운 기술을 쉽게 수용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주어지는 정보의 성격은 아직도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번에 이루어진 연구들을 통해서 과학자들은 자신의 선입견을 단순히 강화하는 것보다는 각기 다른 다양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계도할 수 있는 정보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에 대해 배워야 한다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 출처: 네이처 12월 9일 참고자료: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실린 Dan Kahan의 논문 “Cultural cognition of the risks and benefits of nanotechnology”의 원문 및 Nick Pidgeon의 논문 “Deliberating the risks of nanotechnologies for energy and health applications in the United States and United Kingdom’의 원문 나노기술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기술에 대한 대중과 사회의 수용여부는 매우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특히 과학자들은 새로운 기술, 나노기술을 개발하는데 있어서 대중들의 수용 여부에 매우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가 커지면 커질수록 대중과 사회의 나노기술에 대한 시각에 대한 연구는 매우 중요해질 수 있다. 최근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designtimesp=20469 designtimesp=21586 designtimesp=16247>지에 발표된 세 편의 논문은 이러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정책결정자들에게 있어서도 이러한 대중의 나노기술에 대한 이해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 www.ndsl.kr (GTB 참조) |